

1-4권: 天童正覺 頌古 · 萬松行秀 評唱, 석지현 역주·해설 / 어휘사전: 석지현 편저
1권: 448쪽, 2권: 428쪽, 3권:
396쪽, 4권: 436쪽, 5권: 259쪽
전 5권 세트 ∥ 신국판 양장 ∥ 2015년 10월 10일
발행
책소개
<벽암록>과 쌍벽을 이루는 선(禪)의 공안집(公案集)!
역사상 가장 넓은 대륙을 지배한 칭기즈칸의 참모이자 타고난 지략가였던 야율초재!
잔혹한
전장 속에서 대량 살상을 막았던 그의 곁을 지킨 단 한 권의 책, <종용록>!
종용록(從容錄)은 중국 선종사에서 벽암록과 쌍벽을 이루는 공안송고평창집(公案頌古評唱集, 공안에 대한 송과 평론, 주석,
해설서)이다. 이 책은 벽암록보다 100년 후(1224년)에 출간된 것으로 선문(禪門)의 명문(名文)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벽암록이 임제종 계통[看話禪]을 대표하는 공안송고평창집이라면, 종용록은 조동종 계통[黙照禪]을 대표하는 공안송고평창집이다.
종용록은 묵조선 수행체계[黙照禪]를 완성한 송대의 선승 천동정각(天童正覺, 1091~1157)의 백칙송고(百則頌古)에
만송행수(萬松行秀, 1196~1246)가 시중(示衆) · 착어(着語) · 평창(評唱)을 붙여 비로소 완성되었다. 이 책은 만송행수의 재가제자이자
칭기즈칸의 참모였던 야율초재 담연(耶律楚材 湛然) 거사의 원력으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지혜의 칼’(벽암록)과 더불어 ‘훈훈한 봄바람’(종용록)을 곁들이지 않으면 완벽한 선자(禪者)라고 할 수가 없다. 특히
우리나라 선자(禪者)들은 사선(邪禪)으로만 알고 있는 묵조선(黙照禪)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종용록을 읽어봐야만
한다.
-<머리말> 중에서
종용록은 일반인은 물론, 선승들도 완전히 이해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매우 어려운 텍스트이다. 또 종용록에는 많은
고사(故事)가 있어서 더욱 난해하다. 그래서 종용록은 중국 제자백가의 사상을 집약한 지혜의 보고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시중(示衆) · 착어(着語) · 평창(評唱)을 쓴 만송행수 스님은 불교 외에 유교와 제자백가(諸子百家) 사상에 정통했다. 따라서 선어록에 대한
이해가 깊고 중국 사상과 한자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면 종용록의 문장들이 품고 있는 숨은 뜻을 읽어내기는 매우 어렵다. 종용록이
벽암록과 더불어 선 수행자들의 필독서임에도 불구하고 석지현 역주·해설본 이전에는 제대로 된 번역서조차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에 민족사에서 출간한 종용록은 벽암록을 역주·해설한 석지현 스님이 번역했다. 그는 뛰어난 언어감각을 지닌 시인으로 선시(禪詩)와 선어(禪語)를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 전념해 왔다. 원문에 토를 달고, 각 단락마다 상세한 해설과 주(註)를 달았다. 그리고 종용록 에서 언급되는 이야기들의 출처와 고사성어의 의미를 고증하여 밝혀 놓았다. 이 책의 마지막 권은 어휘사전으로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당송 시대의 속어와 선어를 알 수 있도록 했다. 공안집이나 선어록은 속어를 모르면 완전히 잘못 해석하게 된다. 이 어휘사전 한 권만으로도 선(禪)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번역을 시작한 지 6년, 교정과 편집에만 약 1년이 걸린 끝에 출간되었다! 벽암록을 번역한 경험과 오래도록 선(禪)을 연구한 내공이 아니었다면 7년이란 세월을 굳건히 버틸 수 없었으리라. 총 5권(사전 1권 포함)으로 펴낸 종용록의 완역·출간 과정 자체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저자소개
석지현 스님
종용록 번역한 석지현 스님!
종용록 번역은 무모한 도전이자 목숨을 건 사투!
석지현 스님은 13세 때 충남 부여 고란사로 출가했다.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詩) 부문에 당선되어 승려시인으로서 명성을 떨쳤다. 1973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그 후 명상에 심취하여, 인도, 네팔, 미국, 예루살렘, 티베트 등지를 오랫동안 방랑했다.
“방황의 시절이었지요. 그땐 구루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 자연도 스승이었습니다. 그때 만난 오쇼 라즈니쉬의 말 중에서 가장 괜찮았던 말, ‘굽이쳐라, 삶의 이 에너지로 굽이쳐라. 살아라. 힘차게 살아 굽이쳐라. 삶은 신이다’라는 말에서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절감했지요.”
스님은 이 ‘방랑의 시절’ 동안 인도의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네팔의 히말라야, 부탄의 산길, 예루살렘의 불타는 사막을 여행했다. 미국에서
5년 동안 살면서 전 세계의 종교 지도자들을 만났다.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이슬람 수피의 가르침도 인상적이었고, 다람살라에서 만난 달라이 라마의
소탈함과 따스한 자비심에 큰 감동을 받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수행과 글쓰기에 필요한 자양분을 얻을 수 있었다. 스님의 저술 활동이 불교 경전과
힌두교, 티베트 불교, 선어록 등을 망라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만행 덕분이다.
석지현 스님은 벽암록을 출간한
후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이뤄내야 하는 것은 결국 선의 원형을 찾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은 인도에 있는 게 아니라 모두가 습관처럼 부딪히고 있는 이 땅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나도 인도·네팔을 몇 번씩이나 방황하고 나서야 뒤늦게 그것을 깨우쳤다.”
전 세계의 다양한 종교인들, 스승들과의 만남을 통해 스님에게 더욱 간절하게 다가온 것은 한국의 간화선이었다. 구도 여행을 마친 뒤 이번에는
선의 원형을 찾아 나섰다. 선의 원형을 찾기 위해 스님은 선 수행에 정진했고, 선의 정수를 담고 있는 선시(禪詩)와 선어(禪語)를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 전념했다.
선 수행에서 핵심은 바로 공안(公案 : 깨달은 사람들의 언행이나 선문답)이다. 예로부터 선 수행자들은
이 공안을 꿰뚫지 못하면 깨달음의 체험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공안의 암호를 풀기 위하여(공안 속의 활구를 꿰뚫기 위하여) 목숨을 내걸고
덤벼들었던 것이다. 벽암록 완역 작업은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 하에서 이루어졌다.
“티베트 불교와 위파사나가 서양에 불교 붐과 명상 붐을 일으켰는데 이젠 바닥이 다 드러난 상태입니다. 서양 사람들이 불교 수행을 활용해서 다른 것을 계발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오늘날 정신세계에 유일하게 남은 분야가 있다면 간화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원전이 어려워서 번역을 못해 전혀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종용록> 완역 작업에 착수!
“2007년 필자의 벽암록 완역 역주본(전 5권)이 출간되자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로 뜨거웠다. 이런 와중에서 내친김에 종용록도 마저 완역해 보라는 제안이 있었다. 그러나 벽암록 완역 작업에 10년 세월을 보낸 나로서는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 후 주위 사람들의 지속적인 권유에 나는 또 한 번 무모한 도전을 시도, 종용록 완역 작업에 착수하고야 말았다. 이렇게 하여 종용록 완역 작업이 모두 끝나자 2013년 12월 말이 됐으니 꼬박 6년이 걸린 셈이다.”(종용록 , <머리말> 중에서)
석지현 스님은 간화선 공안집 벽암록을 완역한 후 이 책과 쌍벽을 이루고 있는 묵조선의 공안집 종용록 완역 작업에 착수했다. 벽암록이
출간되기까지 10년, 종용록이 출간되기까지 또 7년, 총 17년을 선어(禪語) 번역에 매달렸다. 스님의 작업방식은 워드가 아니라 모두
육필이었다.
이렇게 정서하기를 3번 반복했다. 스님은 언어를 통해 언어를 깨고, 깨달은 후에는 깨달음조차 깨부숴야
한다고 말하는 선사(禪師)들의 가르침을 좇으며, 쓰고 또 썼다. 스님은 손으로 원고지 약 1만 8천여 매의 원고를 줄 노트에 또박또박 써 내려
갔다. 그러다 손가락이 마비된 적도 있다고 한다. 선어(禪語)를 한 글자 한 글자 해석해 내는 과정이 얼마나 힘겹고 고된 여정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스님에게는 이 모든 과정이 깨달음으로 가는 무모한 도전이자 목숨을 건 사투(死鬪)였다.
종용록처럼 당송대의 속어가 뒤범벅된 선어록을 번역하고 해설하기 위해서는 언어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석지현 스님은 시인으로서 탁월한 언어 감각을 갖고 있으며, 뛰어난 한자 실력, 영어, 일본어, 산스크리트어, 벵골어 등 다양한 외국어 구사 능력을 갖추고 있는 실력자다. 또 젊은 날의 구도 여행을 통해 수많은 스승들을 만나고 공부한 것이 번역 과정에서 큰 힘이 되었다.
석지현 스님의 편·저·역서로는 禪詩, 禪詩감상사전(전 2권), 벽암록(전 5권), 법구경, 바가바드 기따,
우파니샤드, 반야심경, 숫타니파타, 불교를 찾아서, 선으로 가는 길, 왕초보 불교 박사 되다, 제일로 아파하는 마음에-관음경 강의,
행복한 마음 휴식 등 다수가 있다.
목차
종용록은 각 칙마다 7개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①시중(示衆), ②본칙(本則), ③본칙착어(本則著語), ④본칙평창(本則評唱), ⑤송(頌), ⑥송의 착어(頌著語), ⑦송의 평창(頌評唱)이 그것이다.
먼저 시중(示衆)은 해당공안[本則]을 소개하는 부분으로서 벽암록의 수시(垂示)에 해당한다. 벽암록의 수시가 지나치게 과장된 표현을 쓰고 있다면 종용록의 시중(示衆)은 시종일관 잔잔한 흐름을 잃지 않고 있다. 벽암록에는 수시가 없는 공안이 여러 개 있지만 종용록에는 100개의 공안 전체에 100개의 시중이 붙어있다.
본칙(本則)은 옛 공안(古則, 또는 公案)으로서 종용록의 핵심이다. 만송행수가 옛 공안 가운데 중요한 공안
100개를 가려 뽑아왔다. 그런데 이 100칙 공안 가운데 29개 칙(29개의 공안)이 벽암록과 동일하다. 이 29개 칙에 대한 견해가
벽암록과 차이가 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때로는 벽암록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기도 하고, 벽암록이 놓친 급소를
언급하기도 한다. 종용록의 이 100칙 공안은 종용록 의 기본 골격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앞의 시중(示衆)과
본칙착어(本則著語), 본칙평창, 송(頌), 송의 착어, 송의 평창 등은 모두 이 본칙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부착물인 셈이다.
이
100개의 공안에는 경전의 문구를 비롯하여, 제1칙 부처, 제2칙 달마대사로부터 개성이 다른 선승들의 선문답이 총망라돼 있다. 이 가운데에는
(벽암록에는 없는) 그 유명한 조주의 무자공안(趙州無字公案, 趙州狗子)도 포함돼 있다.
본칙착어(本則著語)는 일종의 촌평(寸評)이다. 벽암록의 착어가 기지와 익살로 넘친다면, 종용록의 착어는 담담하기 이를 데 없다. 종용록의 이 담담함 속에 번뜩이는 예지와 절묘한 언어의 구사력이 돋보인다.
본칙평창(本則評唱)에는 본칙공안에 대한 보조설명과 배경이 기술돼 있다. 그러나 그 문장이
당(唐)․송(宋)․원(元)때의 속어체(俗語體, 口語體)로 쓰여 있기 때문에 기존의 문장체 한문(文語體) 해석만으로는 그 해독이 불가능하다. 이
점을 고려하여 별권(別卷)으로 어휘사전을 만들었다.
그리고 평창에는 고사(故事)의 인용이 워낙 많기 때문에 차근차근 읽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사는 그 숨은 뜻과 출처를 일일이 밝혀놨기 때문에 그리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송(頌)은 100칙 공안 하나하나마다 붙인 천동정각의 공안시(公案詩, 頌古)를 말한다. 천동의 이 공안시는 그 시상(詩想)이 웅대하고 심원한 반면에 시정(詩情)은 섬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리고 시어(詩語)는 투명한데 이 역시 수많은 고사가 인용되어 있다. 고사와 시어의 이 절묘한 결합은 묵조풍선시(黙照風禪詩)의 절정인데 우린 여기서 공안선시(公案禪詩)의 진수를 맛보게 된다.
송의 착어(頌著語)는 공안시 한 구절 한 구절마다 그 밑에 붙인 만송의 촌평이다. 만송의 이 착어는 송(頌)의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된다. 만송의 이 착어가 때로는 눈부시게 빛을 발하는 순간이 있는데 이는 만송이 이 착어를 통해서 그 자신의 안목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읽는 이는 이를 놓쳐선 안 된다.
송의 평창(頌評唱)은 천동의 송에 대한 만송의 평창이다. 이 기본골격은 본칙평창과 크게 다르지 않다. 평창의 문장은 대체로 짧다. 그러나 이 짧은 문장 속에 너무나 많은 의미가 함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