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전 -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

설전 -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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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성철과 법정은 근현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이자, 대중의 스승이었다. 하지만 성철과 법정의 이미지는 사뭇 다르다. 성철이 혹독한 고행과 엄격한 자기 수행, 그리고 어떠한 지위와 권력 앞에서도 초지일관 자신의 원칙을 고수했던 초인의 이미지를 지녔다면, 법정은 온후하면서도 강직한 수도자의 자세와 품위를 잃지 않은 삶과 글로 큰 가르침을 주었다.

이 같은 인상의 격차 때문일까? 성철과 법정이 한자리에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성철과 법정의 인연은 깊었다. 법정은 성철을 불가의 큰 어른으로 따랐고, 성철은 뭇 제자와 후학들에게 대단히 엄격하면서도 유독 제자뻘인 법정을 인정하고 아꼈다.

<설전>은 성철과 법정이 나눈 대화와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인연의 흔적들을 발굴하여 처음 책으로 엮은 것이다. '성철 불교'의 본질을 끌어낸 법정의 지혜로운 질문과 거기에 화답하여 인간 존재와 현상의 심층을 드러내는 성철의 대답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성철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필했던 원택의 증언이 더해진다. 원택의 증언을 통해 성철과 법정 사이에 있었던 일화들과 두 사람의 대화 속에 담긴 내밀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저자소개

 

법정 

 

1932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경험하고 삶과 죽음에 대해 고뇌하다가 대학 재학 중 진리의 길을 찾아 나섰다. 1955년 통영 미래사로 입산하여 1956년 송광사에서 효봉 스님의 문하에 출가했다. 다음날 통영 미래사로 내려가 행자 생활을 했으며,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쌍계사 탑전으로 가서 스승을 모시고 정진했다. 그후 해인사 선원과 강원에서 수행자의 기초를 다지다가 28세 되던 해 통도사에서 비구계를 받았다.

서울 봉은사에서 운허 스님과 더불어 불교 경전 번역 일을 하던 중 함석헌, 장준하, 김동길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으며, 1975년 본래의 수행승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자 1992년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불일암을 떠나 아무도 거처를 모르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 문명의 도구조차 없는 곳에서 혼자 살아왔다. 강원도 생활 17년째인 2008년 가을, 묵은 곳을 털고 남쪽 지방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였다. 삶의 기록과 순수한 정신을 담은 법정 스님의 산문집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고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를 영혼의 언어로 일깨우고 있다.

저서로는 수필집 『산에는 꽃이 피네』『인연 이야기』『오두막 편지』『물소리 바람소리』『무소유』등이 있고, 역서로 『깨달음의 거울(禪家龜鑑)』, 『진리의 말씀(法句經)』, 『불타 석가모니』, 『숫타니파타』, 『因緣이야기』, 『신역 화엄경』 등이 있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는 출가 50년, 법정 스님의 잠언 모음집으로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운지에 달렸다는 가르침을 전해준다. 그의 법문들에서 130여 편의 대표적인 잠언들을 류시화 시인이 가려 뽑았다. 2006년, 법정 스님 출가 50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기획된 이 책은, 류시화 시인이 엮은 본문과 세계적인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의 명상적인 사진들로 이루어져 있다. 무소유, 자유, 단순과 간소, 홀로 있음, 침묵, 진리에 이르는 길과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로 채워져 있는 이 잠언집은 단순하되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한 가르침들이 행간마다에서 읽는 이를 일깨운다.

『맑고 향기롭게』는 법정 스님이 직접 가려 뽑은 50편의 글이 담겨 있는 대표산문선집이다. 산중 생활에서 길어 올린 명상과 사색이 특유의 계절적인 감성과 어우러져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영혼의 피안처가 되어 준다. 세상의 부조리를 지적하는 날카로운 현실 감각과, 절대 진리의 세계를 가리켜 보이는 초월적인 혜안이 그의 글의 두 축을 이루고 있다. 『인도기행』은 1989년 11월부터 3개월 동안 이루어진 인도 여행 기록을 적은 법정 스님의 유일한 여행 산문집이다. 이 책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영혼의 나라, 인도의 실체를 만나볼 수 있는 명상 기행집으로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다. 이미 많이 나와 있는 인도 기행서들처럼 단순한 여행 기록이나 가이드북의 차원을 넘어서, 이 책에서는 불교의 탄생지인 인도에서 다시금 느끼는 불교 정신과 더 나아가 종교의 본질과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담긴 법정 스님의 말씀을 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사(生死)와 관련된 인간의 삶 전체에 대한 통찰이 담긴 스님의 시선을 엿볼 수가 있다.

삶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진정한 사유의 기쁨과 포근한 마음의 안식을 제공한 『무소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아오고 있는 작품으로 북적이는 도심이 싫어 자연으로 돌아가 새와 바람, 나무와 벗하며 살아가시는 스님은 평범한 모든 이들에게 맑고 깊은 영혼의 세계를 보여준다. 『무소유』의 원문이기도 한 『영혼의 모음(母音)』은 한 구도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맑고 진실된 기운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자연과 벗하며 어린왕자와의 대화를 통해 순수한 영혼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스님은 평범하고 무료하기까지한 일상을 감동의 언어로 바꾸어 놓는다. 특히 은사 스님이신 효봉선사의 삶을 담담하게 적어내려가는 대목은 법정 스님의 구도자로서의 모습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

‘선택한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라는 청빈의 도를 실천하며 ‘무소유’의 참된 가치를 널리 알려온 법정 스님은 끝없이 정진하는 진정한 수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다른 저서로는 『홀로 사는 즐거움』『말과 침묵』『법정 스님이 들려주는 참 좋은 이야기』『화엄경』『인연 이야기』『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영혼의 모음(母音)』『버리고 떠나기』『물소리 바람소리』『진리의 말씀-법구경』등이 있다.

폐암으로 투병하던 중 2010년 3월 11일 병원에서 퇴원하여 법정스님이 1997년 12월 창건해 2003년까지 회주를 맡아왔던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입적하기 전날 밤 "내 것이라고 하슴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 겠다."고 말했다. 평소 많은 사람에게 수고만 끼치는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도 말며,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 없이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해주고,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며, 탑도 세우지말라'고 당부했다는 법정 스님은 가는 걸음까지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남은 이들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전해주었다.

 

성철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곁에 왔던 부처’로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어릴 때부터 ‘영원에서 영원으로’라는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철학, 의학, 문학 등 동서고금의 책을 두루 섭렵하였으나 그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영가대사의 『증도가』를 읽은 후 머리 긴 속인으로 화두참선을 시작했다. 1981년 1월 대한불교조계종 제7대 종정에 추대되어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936년 봄, 스물다섯의 나이에 당대의 선지식인 동산스님을 인사로 ‘이영주’라는 속인의 옷을 벗고 ‘성철’이라는 법명을 얻어 세속의 모든 인연을 끊고 수행의 길에 들었다. 출가한 지 삼 년 만에 깨달음을 얻어 눈부신 법열의 세계로 들어간 스님은 마하연사, 수덕사, 정혜사, 은해사, 운부암, 도리사, 복천암 등으로 계속 발길을 옮기면서 많은 선사들을 만나 정진을 했다. 장좌불와 팔 년, 동구불출 십 년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였고, 그 독보적인 사상과 선풍으로 조계종 종정에 오르면서 이 땅의 불교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993년 11월 4일 해인사 퇴설당 자신이 처음 출가했던 그 방에서 “참선 잘 하거라”는 말을 남기신 채 법랍 58세 세수 82세로 열반에 들었다. 성철 큰스님은 속인으로 이 땅에 태어나서 부처의 길을 택했다. 오직 진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용기, 그 결의를 평생토록 지킨 철저한 수행, 무소유와 절약의 정신은 바로 ‘우리시대 부처’의 모습이었다. “자기를 바로 보라” “남을 위해 기도하라” “일체 중생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라”고 이르시던 그 참되고 소박한 가르침은 오늘도 가야산의 메아리가 되어 영원에서 영원으로 울리고 있다.

 

목 차

 

책을 시작하며

첫 번째 이야기 _ , 자기를 바로 보라
나를 찾아오지 말고 부처님을 찾아오라

자기 안의 광맥을 발견하라

깨끗하고 맑은 거울 하나

생각을 멈추라

진리를 위해 불교를 택했을 뿐

살아가는 것이 곧 해탈이다

두 번째 이야기 _ , 처처에 부처이고 처처가 법당이네
선문으로 향하는 바른 길

참회만 있을 뿐 용서란 원래 없네

죽을 때까지 공부하라

지도자란 어떤 사람인가

밥을 먹을 것인가, 밥에 먹힐 것인가

세 번째 이야기 _ , 네가 선 자리가 바로 부처님 계신 자리
깨닫는다는 것

참의미는 말과 글에 갇히지 않는다

방편가설과 일승

마음이 곧 부처다

자기 안에서 천국을 찾으라

중도를 깨치는 길

윤회 그리고 대자유

출가 기연

한 덩이 붉은 해가

 

출판사서평

 

雪 戰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운 눈의 성질로 수행자의 냉철하고도 온화한 자세를 형상화하는 한편,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웃게 만드는 유일한 다툼인 ‘눈싸움’의 이미지를 통해 성철과 법정 두 사람 사이에 오간 구도의 문답을 표현하고자 했다.

성철과 법정의 아름다운 인연
그 속에 오간 대화를 처음 책으로 엮다

성철과 법정은 근현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이자, 대중의 스승이었다. 하지만 성철과 법정의 이미지는 사뭇 다르다. 성철이 혹독한 고행과 엄격한 자기 수행, 그리고 어떠한 지위와 권력 앞에서도 초지일관 자신의 원칙을 고수했던 초인의 이미지를 지녔다면, 법정은 온후하면서도 강직한 수도자의 자세와 품위를 잃지 않은 삶과 글로 큰 가르침을 주었다. 이 같은 인상의 격차 때문일까? 성철과 법정이 한자리에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성철과 법정의 인연은 깊었다. 법정은 성철을 불가의 큰 어른으로 따랐고, 성철은 뭇 제자와 후학들에게 대단히 엄격하면서도 유독 제자뻘인 법정을 인정하고 아꼈다.
《설전()》은 성철과 법정이 나눈 대화와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인연의 흔적들을 발굴하여 처음 책으로 엮은 것이다. ‘성철 불교’의 본질을 끌어낸 법정의 지혜로운 질문과 거기에 화답하여 인간 존재와 현상의 심층을 드러내는 성철의 대답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성철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필했던 원택의 증언이 더해진다. 원택의 증언을 통해 성철과 법정 사이에 있었던 일화들과 두 사람의 대화 속에 담긴 내밀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뛰어난 사상과 좋은 글이 시대를 관통하여 사랑받듯, 한 시대의 정신을 상징했던 두 큰 스승이 나눈 이야기들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고전’으로 남을 것이다.

■ 1967년, ‘백일법문’ 속의 성철과 법정

법정, 성철의 백일법문에 등장하다


법정과 성철은 속세의 나이와 승려로서의 나이 모두 정확히 20년 차이가 난다. 법정이 출가하기 한 해 전인 1955년에 성철은 이미 초대 해인사 주지에 임명될 정도로 명성과 인망이 자자했다(이때 성철은 주지 임명을 거절하고 대구 파계사 성전암으로 옮겨 10년 동안의 수행에 들어갔다). 각기 해인사와 송광사에서 출가하여 법통이 달랐으나, 법정에게 성철은 아득한 선배이자 조계종의 큰 어른이었다.
법정은 경전 공부에 진척이 빠르고 경전을 우리말로 옮기는 실력이 뛰어나 불교사전 편찬 작업에 참여하는 등 타고난 문재를 바탕으로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경전을 번역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통도사와 해인사에 머물렀다.
법정이 해인사 강원에 머물던 1967년, 성철은 해인사 해인총림 초대 방장에 추대된다. 그리고 성철은 같은 해 12월 4일부터 100일 동안의 설법에 들어간다. 이것을 ‘백일법문()’이라고 일컫는데, 이때의 설법은 하나 빠짐없이 녹취되었다. 그런데 이튿날인 12월 5일에 이르면 한 젊은 승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성철의 법문에 끼어든다. 바로 법정이었다.

성철의 현답을 이끌어낸 법정의 현문들

성철의 백일법문이 열린 장소는 해인사 대적광전이었고, 수많은 승려와 불자가 성철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 있었다. 법정은 여기에서 아주 원론적인 질문들을 던져 성철의 형이상학적인 설법이 대중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불교란 무엇입니까?”, “타 종교와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중도 이론을 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십시오.”, “중국 선종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등등의 질문은 불교의 초심자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법정은 스스로 초심학인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져 성철의 법문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나누기 위해서 묻는 것이다. 성철의 뛰어난 점 역시 이 대목에서 빛을 발한다. 법정의 의도를 파악한 것인지, 성철 또한 법정의 그 질문들에 일일이 성심을 다해 답했다.
법문이 무르익으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기도 한다. 중국의 육조 혜능이 일자무식이었다는 이야기에 대해 법정이 성철을 따지고 든 것이다. ‘가야산의 호랑이’라는 별명에서 드러나듯, 뭇 제자와 후학들은 성철 앞에서 오금을 펴지 못했으나 법정은 스스로 풀리지 않는 의문에 대해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이때 역시 성철의 넓은 품이 드러난다. 성철은 마치 영민한 제자의 도전을 즐거워하는 스승처럼 법정의 은근한 도전을 즐기는 음성으로 일일이 답한다.
그리고 법정이 조심스러운 어투로 성철에게 이렇게 묻는다.
“사람이…… 정말 성불할 수 있습니까?”
기독교 입장에서 보면 성직자가 “정말 천국이 있을까?”라고 의문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다. 법정의 이 질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법정이 성철에게 던진 질문들은 성철의 설법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포석이자, 서른 후반에 접어든 ‘청년’ 법정의 불교에 대한 간절한 관심과 생각 그리고 그의 마음 한 구석을 엿보게 만드는 창문이기도 한 것이다.
‘백일법문’ 속 성철과 법정의 대화는 12월 5일, 8일, 9일, 23일의 녹취록에 담겨 있다.

■ 1982년, 성철과 법정의 대담

법정, 불일암으로 향하다


공교롭게도 1968년 법정은 일종의 ‘필화’에 휘말린다. 성철은 자신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반드시 불전에 3천 배를 해야 한다는 규칙을 정해 놓고 있었는데, 한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법당에서 절을 하는 대학생 무리를 목격한 법정이 그것은 절이 아니라 몸을 굽혔다 폈다 하는 굴신운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성철의 ‘3천 배’ 규칙을 폄하하는 글을 대한불교(현 불교신문)에 기고한 것이었다. 성철의 상좌였던 원택은 이때의 일을 이렇게 회상한다.

당사자인 성철 스님께선 별말씀이 없으셨고 해인사 주지 스님께선 “방장 스님(성철)은 법정 수좌를 좋아해.”라며 다독이셨으나, 혈기 넘치는 젊은 스님들이 발끈하여 법정 스님이 바깥나들이 가신 틈에 스님 방의 물건을 치워 버린 일이 있었다. 법정 스님은 논란이 일자 아무 말 없이 서울로 수행처를 옮기셨다. 이것이 1968년의 일이었다.

서울 봉은사로 수행처를 옮긴 법정은 이후 월남파병을 반대하는 뜻을 밝혔다가 승적을 박탈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유신정권 시절에는 재야인사와 관계하다가 감시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던 중 1975년 송광사의 불일암으로 향했다. 시대의 걸작이 된 《무소유》가 출간된 것은 이듬해인 1976년이었다.

오늘, 지금을 향하고 있는 성철과 법정의 대화

1980년 초반, 두 권 분량의 원고를 탈고한 성철이 원택에게 일렀다.
“송광사 불일암 법정 스님을 찾아가라. 찾아가서, 당대에서는 법정 스님이 한글 글쓴이로는 최고이니 내가 《본지풍광》과 《선문정로》의 윤문을 부탁한다고 말씀드려라.”
성철의 전언을 전해 들은 법정은 “스님 글에 크게 손댈 생각은 없다”면서도 갖은 정성을 기울여 두 권의 책이 발간되도록 애썼다. 원택은 이때 법정과 함께 작업을 했던 인연으로 이후 성철의 사상을 전하는 책을 편찬하는 일에 매진하게 된다.
1981년, 성철은 대한불교조계종 제6대 종정에 추대된다. 같은 해 12월에는 《선문정로》가 발간되었다. 《선문정로》가 만들어지는 동안 성철과 법정 사이에 왕래가 있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1982년 벽두에 한 언론사의 주선으로 대담을 갖기 위해 성철과 법정은 다시 마주 앉았다. 못다 푼 응어리가 있었던 것일까? 법정은 대뜸 다시 ‘3천 배’에 관해서 묻는다. 이날의 대화는 성철이 ‘3천 배’ 규칙에 담긴 오해를 풀어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대담에서 성철과 법정은 자아를 닦는 일상의 수행법과 불교의 근본적인 정신, 지도자의 덕목, 물질만능 시대의 인간성 회복 문제, 권력과 이념에 편승하지 않는 언론, 미래가 꺾인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 등을 나눈다. ‘백일법문’ 속의 대화가 불교를 주제로 삼고 있다면, 이 대담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의 고뇌와 문제들이 지금도 되풀이되고 것일까? 이때 성철과 법정이 나눈 대화의 내용들은 공교롭게도 정확하게 2016년 오늘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성철과 법정의 대화는, 선승이 세상과 외따로 떨어져 홀로 수행만 하는 존재라는 인상을 말끔히 지워 버린다. 이들이 치열하게 타인과 세상을 위해서 살아갔음을, 또 항상 사회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그 본질은 ‘사랑’이었다.
이후 성철과 법정은 보조국사 지눌의 사상을 두고 첨예하게 맞서는 동안에도 1987년 겨울에 성철이 포영집(사진집)을 낼 때 법정이 서문을 써 주는 등 두 사람의 우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1993년에 성철이 열반에 들었을 때 추모사를 쓴 이도 법정이었다. 일견 팽팽하게 맞서면서도 서로를 존경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 모두 사랑과 자비를 유일한 신념으로 받아들이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성철이 이 땅에 오고(4월 19일) 법정이 우리 곁을 떠난(3월 11일) 봄이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큰 스승들이 떠난 빈자리는 너무도 커서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그런 안타까움 때문일까? 오늘, 《설전》에 담긴 성철과 법정의 메아리가 더욱 크게 울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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