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승법계도원통기』는 고려 균여가 한국 화엄학의 시조인 의상의 <법계도(法界圖)>의 내용을 해설한 강의를 기록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법계도원통기’로 약칭된다. 이는 <법계도>에 대한 가장 체계적인 해설서로서 의상의 화엄사상이 통일신라와 고려 초기의 불교사상가들에게 어떻게 이해되었는지를 상세히 보여준다.
『법계도法界圖』 해설을 통해 화엄사상의 초기 면모를 보여주는 균여의 가장 이른 시기 저술
이 책은 고려 균여(均如, 923~973)가 한국 화엄학의 시조인 의상(義湘, 625~702)의 『법계도法界圖』의 내용을 해설한 강의를
기록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법계도원통기’로 약칭된다. 이는 『법계도』에 대한 가장 체계적인 해설서로서 의상의 화엄사상이 통일신라와 고려 초기의
불교사상가들에게 어떻게 이해되었는지를 상세히 보여준다.
특히 균여는 『법계도』의 도시圖詩와 기記를 지은 이를 밝히는 대목에서 지엄智儼이
도시를 지었다는 설과 의상이 이 두 가지를 모두 지었다는 설을 소개한 뒤, 최치원의 기록에 의거하여 후자의 설을 지지하고 있다. 아울러 이 책은
균여의 저술 가운데 시기적으로 가장 앞서는 문헌으로서 그의 화엄사상의 초기 면모를 잘 보여준다.
이 책에는 의상계는 물론 의상계가
아닌 승려들의 견해도 인용되고 있어서 『법계도』의 내용에 대한 당시 불교계의 다양한 이해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고려 후기에 편찬된
『법계도기총수록』의 경우 기존의 『법계도』해설서인 <대기>·<법기>·<진기> 등으로부터 중요한 내용만을 발췌하여
정리하고 있는 것과 달리, 『법계도원통기』는 『법계도』의 내용 전체에 대해 축자적逐字的 설명을 하면서 여러 다양한 견해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점에서 보다 더 자세한 『법계도』 해설서로 볼 수 있다.
<출판사 리뷰>
『일승법계도원통기(一乘法界圖圓通記)』는 958년 7월에 균여가 개경의 마하갑사(摩訶岬寺)에서 『법계도』에 대하여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서 여러 차례의 편집 과정을 거쳐 1287년에 현재와 같은 형태로 완성되었다. 『법계도』는 의상이 스승인 지엄(智儼)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화엄 사상을 7언(言) 30구(句)의 시(詩)로 압축하여 표현하고 이를 여러 번의 굴곡을 거쳐 처음과 끝이 이어지게 하는 반시(槃詩)의
형태로 배치한 후 그에 대해 스스로 그 내용을 설명하는 내용을 붙여서 1卷의 책으로 만든 것이다. 원래는 반시 부분만을 ‘법계도’라고 하고 설명
부분은 ‘기(記)’라고 하며, 양자를 합하여 『법계도기』라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도(圖)와 기(記)를 합하여 『법계도』라고 부른다. 제목 중의
원통(圓通)은 균여의 법호인 원통수좌(圓通首座)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원통기(圓通記)는 ‘원통수좌 균여의 강의를 기록한 글’이라는 뜻이다.
본래는 상·중·하 3권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중권은 전하지 않고 상권과 하권 두 권만 전하고 있다.
『일승법계도원통기』는
현존하는 균여의 저술 중에서 유일하게 목판이 전하지 않는 문헌이다. 본래는 1287년에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던 것으로 확인되지만 현재는 목판본을
옮겨 적은 후대의 필사본만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 전해지는 『일승법계도원통기』의 저본이 되는 1287년의 목판본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은 이
책의 발문에 자세히 정리되어 있다. 현존하는 균여의 저술 중에서 유일하게 불완전하게 전해지는 책이다. 현재까지 동국대학교소장본과 규장각소장본,
『균여대사화엄학전서(均如大師華嚴學全書』 수록본 등이 알려져 있는데 내용상의 차이는 거의 없다. 『한국불교전서』에서는 동국대학교소장본을 저본으로
하고 나머지 필사본들을 대조하여 교감하였다.
